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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정호승 본문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정호승

행복 팡팡 2024. 1.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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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정시의 거장, 정호승
그의 시 너머에 있는 꾸준한 삶의 기록


등단 50년을 넘긴 한국 서정시의 거장, 전 세대에 사랑받는 우리 시대 시인 정호승. 그는 어떤 사연이 있어서 그처럼 아름다운 시를 쓸까? 명화의 물감을 걷어내면 거친 스케치가 드러나듯 정호승의 시에도 인간적 삶이 배경으로 깃들어 있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정호승 시인이 직접 가려 뽑은 시 68편, 그 시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산문 68편을 한데 묶은 ‘시가 있는 산문집’이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슬픔이 기쁨에게〉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등 시인의 대표 시가 다수 수록되었으며, 시를 창작할 당시의 사연을 풀어낸 산문들이 짝지어 펼쳐진다. 어린 시절 모습부터 군 복무 시절, 특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운 부모님의 모습 등 시인이 소중히 간직해온 20여 컷 사진이 함께 실렸다.

 

정호승은 누구?????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등이,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갈대』, 『수선화에게』 등이, 동시집 『참새』, 영한시집 『부치지 않은 편지』,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어른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 『연인』, 『울지 말고 꽃을 보라』, 『모닥불』, 『기차 이야기』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소년부처』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하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언제나 부드러운 언어의 무늬와 심미적인 상상력 속에서 생성되고 펼쳐지는 그의 언어는 슬픔을 노래할 때도 탁하거나 컬컬하지 않다. 오히려 체온으로 그 슬픔을 감싸 안는다.

 

오랜 시간동안 바래지 않은 온기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그의 따스한 언어에는 사랑, 외로움, 그리움, 슬픔의 감정이 가득 차 있다. 언뜻 감상적인 대중 시집과 차별성이 없어 보이지만, 정호승 시인은 ‘슬픔’을 인간 존재의 실존적 조건으로 승인하고, 그 운명을 ‘사랑’으로 위안하고 견디며 그 안에서 ‘희망’을 일구어내는 시편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구축하였다.

 

‘슬픔’ 속에서 ‘희망’의 원리를 일구려던 시인의 시학이 마침내 다다른 ‘희생을 통한 사랑의 완성’은, 윤리적인 완성으로서의 ‘사랑’의 시학이다. 이 속에서 꺼지지 않는 ‘순연한 아름다움’이 있는 한 그의 언어들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책 속으로

나는 요즘 차를 들면서 지난날의 실패의 고통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다. 지금 현재를 생각하려고 해도 과거로 돌아갈 때가 많다. 그럴 때 굳이 과거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계속 차를 들고 있으면 내가 끌려갔던 그 과거의 분노와 상처에 대해 그만 무덤덤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차는 내 마음속에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듯 내 과거를 현재의 세계와 중화시킨다. 강물이 바닷물을 만나면 결국 바닷물이 되어버리듯 차를 드는 동안 나는 과거에 있는 듯하지만 늘 현재에 있다.
--- p.26

스테인드글라스는 맑은 통유리로 만들지 않는다. 조각조각 난 색색의 유리를 붙여서 만든다. 그 조각조각 난 색유리를 통과한 햇살이 그토록 아름다운 색채의 문양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이 산산조각 난 까닭 또한 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나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내 인생에 고통이 존재하는 것이다.
--- p.166

신병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기 위해 ‘낙엽도 직각으로 떨어진다’는 춘천 보충대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전방 지역 어디로 배치받게 될지 몰라 두려움과 초조함에 떨고 있을 때, 이등병인 나를 누가 면회왔다고 했다. 나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넓은 연병장을 숨 가쁘게 달려갔다. 멀리 면회실이 있는 정문 위병소 옆에 조그마한 한 사내가 외투 깃을 올리고 서 있었다. 아버지였다. 뜻밖에 아버지가 대구에서 그 먼 춘천까지 면회를 오셨다.
“춥제?”
아버지가 외투 속에 넣어두었던 손을 꺼내 고된 훈련으로 거칠게 상한 내 손을 잡아주셨다.
“배고프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빵 먹을래?”
면회소에서 아버지가 사주신 단팥빵을 연달아 몇 개나 급히 먹으면서도 핑 도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 p.358

나도 타이탄 트럭을 타고 참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다. 얼핏 손가락으로 꼽아봐도 열댓 번은 더 한 것 같다. 그 까닭은 바로 가난했기 때문이다. 전세 임대차계약 기간이 2년인 요즘과는 달리 예전에는 6개월이 계약 기한이었다. 그러니 잘못하면 1년에 두 번을 이사하게 되고 만다. 이사할 때 타이탄 트럭에 짐을 다 싣고 나면 내가 탈 자리가 없어 어떤 때는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서울 시내를 달리게 된다. 그때 바라보게 되는 거리의 풍경은 쓸쓸하다 못해 참으로 서러웠다. 그래서 그때 타이탄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도시 한복판을 달려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내 마음속에는 가난한 가장이 운전하는 타이탄 트럭이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고 있다. 멀리 암벽이 있는 해안까지 달려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몇 차례나 반복한다. 타이탄 트럭까지 아름답게 해주는 봄바다가 고맙다. 바다는 가난의 추억까지 아름답게 해준다.
--- p.392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신설동 로터리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걷다가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해본 적도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하나의 풍경이 되어 서 있는 군밤 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부터 나는 젊음을 잃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눈 내리는 거리를 서성거린다.
--- p.461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한번은 구두를 닦으러 구두닦이 집에 들렀다가 누가 종이에 볼펜 글씨로 써서 붙여놓은 시 〈구두 닦는 소년〉을 본 적 있다. 구두 밑창과 이런저런 수선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는 그 좁은 공간 벽면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 좋네요. 자작시예요?”
나는 짐짓 모른 척하고 말을 붙였다.
“아니요. 누가 이런 좋은 시가 있다고 보내줬어요. 나한테 딱 어울리는 시라고 하면서요. 그래서 이렇게 붙여놓고 매일 읽어봅니다. 나도 구두를 닦을 때마다 별을 닦는다고 생각하면 은근히 마음이 좋아져요.”
나는 그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져 자칫 내가 쓴 시라고 말할 뻔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하면 구두를 닦아달라고 부탁한 내가 별이 되는 거네요.”
내가 그 시를 쓴 시인이라고는 하지 않고 그저 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때 내 가슴속에서 시를 쓴 보람과 기쁨이 느껴졌다.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고 읽는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의 구두를 닦고 수선하는 고단한 노동에 한 편의 시로 웃음과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 그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 
--- p.567

 

 

출판사 리뷰

시와 산문은 따로 떨어질 수 없는 ‘한 몸’
정호승 시인이 직접 말하는, 시의 배경이 된 사연들


1972년 등단해 50년 넘도록 시를 써온 정호승. 그는 일상적인 언어를 쓰는 친근한 시인으로서 모든 세대에 사랑받는다.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 등 현실에 예민하게 감응하고 심오한 성찰을 빚어낸 시집을 펴내며 명실공히 한국 서정시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등 산문집 역시 출간 후 18년이 넘도록 꾸준히 읽히고 있다.

시인은 시와 산문이 따로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라고 한다. 시든 산문이든 일상에서 길어 올린 한순간에서 출발한다고, 시와 산문이 하나로 엮인 책을 오래도록 소망해왔다고 고백한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은 이러한 시인의 소망으로 탄생했다. 2020년 처음으로 출간한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모든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그 사랑에 힘입어 2024년 두 번째 ‘시가 있는 산문집’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가 독자들을 만난다.

‘시인 정호승’ 너머에 있는 ‘인간 정호승’
누구의 삶이든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먹먹한 위로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시인이 직접 뽑은 시 68편, 시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산문 68편을 한데 엮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슬픔이 기쁨에게」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등 시인의 대표 시와 함께, 시를 쓴 당시 심정과 사연을 풀어낸 산문이 짝지어 펼쳐지는 구성이다. 따라서 시 해설이나 분석과는 거리가 멀다. 시인은 고해하듯 깊은 내면을 털어놓는다. 청춘에 겪은 이별을 어떻게 승화했는지, 1970년대를 살던 청년 시인으로서 어떤 결의를 했는지, 가난한 가장의 눈으로 본 서울의 밤은 어땠는지….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에서 빌려온 책 제목처럼, 정호승 시인은 그동안 겪어온 사랑과 고통에 관해 적으며 그것이 빼어난 시로 피어나는 광경을 보여준다.

청년기 시부터 최근 시까지 망라하여 엄선했기에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에는 정호승이라는 한 인간의 삶이 문학적 형태로 응축돼 있다. 어둠을 두려워하고 책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 사랑하는 사람과 눈길을 걷던 밤을 지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노년까지. 가까운 이를 미워하고 고통스러워하다 끝내 다시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는 보통의 삶.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다. 그 시를 내가 대신해서 쓸 뿐이다”라는 시인 자신의 말처럼,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인간 정호승’의 사연이 ‘시인 정호승’의 시로 피어남을 보여주면서 누구의 삶이든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먹먹한 위로를 전한다. 시인의 서랍에 있던 빛바랜 사진들을 통해 지나간 시절을 생생히 엿볼 수 있는 것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를 읽는 하나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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