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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책 추천] 본문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책 추천]

행복 팡팡 2024. 1. 24.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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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한 쇼펜하우어의 독한 가르침

“인간의 불행 중 상당수는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기는 일이다”

쇼펜하우어는 니체의 철학, 헤세와 카프카의 문학,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태어났다면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 차선이다.”라고 말해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졌지만, 그 어떤 철학자, 작가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이 책은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가 출간 6개월 만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10만 부 돌파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기념해 펴낸 스페셜 에디션이다.

쇼펜하우어가 세상을 떠난 지 1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가 오늘날까지 쇼펜하우어를 기억하고 그가 남긴 저서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쇼펜하우어가 인생 그 자체를 텍스트 삼아 삶의 고통을 철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인생은 고통이며, 고통은 집착에서 비롯되고, 따라서 집착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고통의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비관에 대한 비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행복해지고 싶어서 결국 불행해져 버린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쇼펜하우어는 일평생 열한 권의 책을 썼고, 그중 생전에 출판된 저서는 여덟 권이다. 괴테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1만 페이지가 넘는 일기를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는 그의 도서들과 편지, 일기 등에서 쇼펜하우어의 삶에 대한 통찰과 정곡을 찌르는 인생 조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쇼펜하우어를 알고 있는 사람도, 알지 못했던 사람도 이 책을 읽게 되는 순간, 옛 철학자의 독설 안에 감춰진 열망과 투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누구?????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유럽의 항구 도시인 단치히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와 소설가인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실존 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 삶의 비극적 면면을 탐구한 사상가이며, 그의 철학은 근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788년 단치히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93년 함부르크로 이주해 성장했고,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한동안 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805년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학자가 되기 위해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1811년 베를린대학교에 들어가 리히텐슈타인, 피셔, 피히테 등 여러 학자의 강의를 들었고, 1813년 베를린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를 집필, 우여곡절 끝에 예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19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한 후 1820년부터 베를린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839년 현상 논문 「인간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로 왕립 노르웨이 학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1860년 9월 21일 자주 가던 단골 식당에서 식사 중 폐렴으로 숨진 후 프랑크푸르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충족이 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이 세상에 나 이상의 존재는 없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의 문제고, 내가 존재한다는 건 오직 나만의 문제다. 나는 이 세상에 있고 싶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쓸데없는 말로 그것이 나의 존재라고 설득당하고 싶지 않다.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어떻게 되는지를 분명히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낡은 계략에 속지 않을 것이다.
--- p.23

다수는 그저 많은 숫자일 뿐, 많다고 정의가 되는 건 아니다. 적음을 무능력하다는 편견으로 뒤집어씌우는 것에 반대한다. 윽박질러도 따라가지 않겠다. 그것이 ‘도덕!’이라고 외쳐도 듣지 않겠다. 여기가 내 한계라고 한다면, 한계라는 사물을 결정하는 건 오직 나의 인식뿐이라고 가르쳐줄 테다.
--- p.24

좋은 습관을 기르는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인내다. 인내는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 몸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깨닫고 그 범위 안에서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인내다. 견뎌내지 못할 때까지 버티는 건 멍청한 짓이다. 남들도 하니까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동반 자살이나 다름없다.
--- p.26

이 세상에서 나만 외롭고,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한다는 망령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우울의 망령에 완전히 정복당하고 나면 사람의 영혼엔 오직 분노만이 남게 된다. 외로워서 화가 나고, 피곤해서 화가 나고, 남들이 행복해서 화가 나고, 마침내 화만 나는 내가 싫어서 미칠 듯이 화가 난다.
--- p.30

내가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뭔가를 얻기보다는 뭔가를 제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라는 것이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난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건강해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병에 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즐겁게 놀기보다는 욕을 먹거나 비난받지 않도록 한다. 이것은 다분히 현실적인 생활수칙이다. 이 수칙들을 지킨다면 작지만 확실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 p.67

인생에서 가장 애처로운 시간은 먼 훗날, 관 속에 누울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을 때, 일생을 헛된 욕망을 좇느라 세월을 탕진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는 한 번 더 시간이 주어지기를 가만히 소망해보는 때다.
--- p.100

요즘은 어린아이들마저 가난을 죄로 여긴다. 가난을 죄로 여기는 사상은 사냥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대로 죽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하는 동물들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이 땅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그것은 죄도 아니다. 무능력과 태만의 결과도 아니다. 가난은 원석과도 같다. 이 돌 속에 어떤 보석이 숨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 p.164

나는 스스로 시련을 내린다. 아무도 모르는, 증인이라고는 오직 나밖에 없는 시련. 예를 들자면 이렇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지 않더라도 정직히 행할 것. 나 홀로 있어도 예의를 갖출 것. 듣는 사람이 없어도 거짓말을 입에 담지 않을 것. 내 것이라고 생색내지 않고 몰래 나눠줄 것. 그들이 내게 실수를 저질렀어도 가르쳐주지 않을 것 등등.
--- p.209

신체가 그릇이라면 내용물은 의지다. 따라서 자신의 의지를 깨닫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것은 그릇의 가치로 살아왔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내용물이 버려진 인생이 낙담과 절망에 시달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며, 그릇만 남은 인생에 풍요가 찾아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허황된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 p.244
 
 

출판사 리뷰

니체, 헤세, 카프카, 카를 융, 프로이트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쇼펜하우어였다”

항구를 출발한 배는 필연적으로 파도를 거슬러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의심이 가지 않는다면 신앙이 아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젊은 청년들이 출발선을 떠나보기도 전에 인생을 포기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일찍 주위를 둘러봤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주인공이 자신임에도 이 무대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신을 존재하게 만들 수도 있고, 존재하는 신을 저주할 수도 있으며,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 형틀에 매단 것도 인간이었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도 인간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현상은 오직 인생뿐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고민해서는 곤란하다. 인생과 맺은 젊은 날의 약속을 내가 먼저 파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인생은 나와의 계약을 어기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인생이 베푸는 ‘절망’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이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인생도 그다지 불가사의한 현상은 아니다, 그다지 불행할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

시대는 점점 더 포악스러워지고, 그에 비례하여 인간성까지 날로 강퍅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라는 사람밖에 없다”라는 진리를 가슴에 새긴 사람이라면 이 험한 시대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표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대의 오늘은 최악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대의 청춘은 내일을 준비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절망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절망은 끝이 아니다. 하나의 몰락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잉태하고 태어나는 위대한 절망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절망은 궁극의 희망이다. 그에게 고통은 소멸해야만 끝나는 아픔이 아니다. 그 아픔 끝에 새 생명이 탄생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가치관이 성립된다.

거칠고, 때로는 표독스럽기까지 한 쇼펜하우어의 날카로운 언어들이 우리의 시대까지 살아서 약동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를 읽은 한 독자는 “역설적이게도 인생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제거하자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왜 꼭 필요한 것인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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