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
우리나라의 전통악기인 국악기의 이해 본문
우리나라의 전통악기인 국악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조선 성종 때의 음악이론서로 유명한 악학궤범은 악기의 계통에 따라 향악기, 아악기, 당악기로 구분하였다. 향악기에는 거문고·가야금·향피리·대금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아악기에는 편종·편경·박·축·어·생황 등이 포함되고, 당악기에는 장구·당비파·해금·아쟁·당적·당피리·퉁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증보문헌비고에는 악기를 만드는 8가지 재료인 쇠, 돌, 명주실, 대나무, 바가지, 흙, 가죽, 나무 등으로 나눠 총 61종의 국악기를 분류하였다. 오늘날에는 이름만 남은 악기를 제외하고 현재에도 연주되는 악기 중심으로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줄이 울려 소리 내는 현악기로 가야금, 거문고, 아쟁, 해금 등이 있으며 관속 공기를 울려 소리 내는 공명악기로 대금, 소금, 피리, 퉁소, 단소, 태평소등이 있으며 자기 몸이 울려 소리 내는 체명악기로는 징, 꽹과리, 편종, 편경, 박, 어 등이 있으며 가죽을 울려 소리 내는 피명악기로는 대표적으로 북이 있으며 좌고, 장구, 용고, 등으로 총 54종이었다.
우선 현악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첫째 가야금에 대해 알아보자. 가야금 또는 '가얏고'라고 불리며, 모두 가야국의 현악기를 말한다. 삼국사기에는 가야국의 가실왕이 당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가실왕이 언제 만들었는지 만든 연대가 불분명하다. 이보다는 앞선 시기에 해당하는 신라시대의 토우(土偶)에 가야금과 같은 모양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신라시대 진흥왕 때 가야금 명인 우륵은 가야국이 망하자 신라로 망명하여 신라왕으로부터 악사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12곡이 제자인 만덕과 계고와 법지에 의해 아정(雅正)한 음악으로 개작되었다고 한다. 우륵에 의해 가야금은 신라 음악에 있어 귀한 현악기로 자리매김 한다. 통일신라 때에는 일본에 전해져 신라금이라 불려졌으며, 지금도 일본 정창원(正倉院) 이라는 곳에 악기가 보존되어 있다. 가야금에는 정악가야금과 산조가야금이 있다. 신라시대 이후로 거의 원형이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풍류가야금 또는 법금(法琴)으로 불리는 정악가야금은 비교적 몸체가 크고, 줄과 줄 사이의 간격도 넓게 되어 있다. 또한 악기의 몸통 끝에 양이두(羊耳頭)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가야금의 12줄을 묶는 역할을 한다. 크기도 작고 줄 사이의 간격도 좁은 산조가야금은 주로 민간의 빠른 음악인 산조와 시나위와 무속음악에 연주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산조가야금도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 되며 가야금산조의 발생이 100여 년 전의 일이다. 가야금을 만드는 방법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데, 정악가야금은 큰 오동나무를 악기의 모양대로 자르고, 그 속을 파내어 공명통(울림통)으로 사용하지만, 산조가야금은 거문고와 같이 앞면은 오동나무, 뒷면은 밤나무를 사용하여 앞뒷면을 붙이고 악기둘레를 장식하기도 한다. 가야금의 줄은 연주자의 바깥쪽부터 낮은 음을 내는 굵은 줄을 사용하며 안쪽으로 올라올수록 음이 높아지고 줄의 굵기는 점차 가늘어진다. 이 줄은 명주실을 여러 겹 꼬아 만든 것이다. 연주방법은 악기의 현침이 있는 쪽을 연주자의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양이두쪽은 바닥에 내려놓고 앉은 자세를 취한다.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로 줄을 뜯거나 튕겨서 소리를 내고, 왼손은 줄 위에 얹어 줄을 누르거나 흔들어서 전성·요성·퇴성의 표현을 한다. 가야금의 구음법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가야금산조는 산조의 효시로 다른 산조에 비해 많은 유파를 낳았으며, 빠른 속도로 발전해오다가 요즘은 정체기에 접어들어 발전 속도가 더디다. 반면 창작국악에서 가야금의 곡이 많이 발표되어 전통적인 수법 외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수법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현의 개수를 24개로 늘려 음역을 넓히고 악기 크기를 조절하여 현대사회에 맞는 악기로 개량하기도 하였다.
둘째 거문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거문고는 삼국사기에는 “그 때에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 그로 인해 그 이름을 현학금이라 하였으며 뒤에 현금이라 하였다”라고 전한다. 거문고를 고구려의 금, 즉 감고, 거뭇고, 가뭇고로 음이 변하여 되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거문고의 명칭은 현학래무(玄鶴來舞)에서 온 것이 아니라 감고 또는 검고가 변하여 거문고로 된 것이라고 추측되다. 거문고는 5세기 이전에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처음에 진나라 사람이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에 보내 왔다. 고구려 사람들이 그 악기의 형태는 알 수 있으나, 그 소리와 연주하는 법을 알지 못하므로, 고구려 사람으로서 능히 그 소리를 알고 아울러 이것을 잘 탈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후하게 상을 주기로 하였다. 그 때 제이상(第二相) 왕산악(王山岳)이 그 본 모양을 그대로 둔 채 크게 그 제도를 바꾸어 만들고, 겸하여 백여 곡을 작곡하여 이를 연주하였다. 라는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1949년에 안악에서 발굴된 제3호분(第三號墳) 후실(後室) 동벽(東壁)의 무악도(舞樂圖)에도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것을 연주하는 그림이 있는데 이들이 왼손으로 줄 누르는 법과 오른손으로 술대 잡는 법이 현재의 거문고와 비슷하다. 고구려 벽화의 악기는 원형의 거문고이고 현재의 거문고는 중간에 그것이 개작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공명통은 아쟁이나 대쟁과 같이 상자식(箱子式)으로 짜서 만들어진다. 전체 길이가 5척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최근에는 작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현은 전부 6줄로, 셋째 줄인 대현이 가장 굵고, 첫째 줄 문현, 여섯째 줄 무현, 넷째 줄 괘상청, 다섯째 줄 괘하청, 둘째 줄 유현의 순으로 점차 가늘어진다. 괘(棵)는 전부 16개로, 첫째 괘에서 16째 괘로 가면서 점차 작고 얇아진다. 술대를 사용할 때 나는 잡음을 방지하기 위하여 가죽을 앞면에 대는데 이것을 대모라고 한다. 귀루는 첫째 괘의 줄 닿는 면에 붙이며, 농현할 때 줄의 흔들림으로 인한 잡음을 방지한하는 역할을 한다. 앞면은 오동나무를 쓰는데, 특히 돌 사이에서 오랫동안 자란 석상동을 으뜸으로 치며, 같은 석상동이라도 땅에서 2m-3m 높이의 무늬와 옹이가 없는 곧고 높은 가지를 사용한다. 뒷면은 밤나무와 같은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여 만든다. 대모는 소가죽을 사용하며, 흰색의 부드럽고 두꺼운 것을 제일로 친다. 줄은 가는 명주실을 꼬아서 쓰며, 춘잠(春蠶)·하잠(夏蠶)·추잠(秋蠶) 중에서 추잠을 제일로 친다. 귀루는 홍록색의 진사를 사용하여 만든다. 술대는 단단하고 가는 해죽(海竹)이 좋으며 근래에는 흑단(黑檀)나무와 화리나무도 사용한다. 우리나라 악기 중에서 가장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는 거문고는 정악(正樂)에서나 산조(散調)에서나 다 같이 넓은 음역 3옥타브에 이른다.
셋째 해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문헌에 따라서 ‘혜금(嵇琴)’이라고도 되어 있고 민간에서는 ‘깡깡이’ ‘깽깽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당나라 때 해(奚)부족에 속하는 유목민들 사이에서 생겨났으며 중국의 송나라와 원나라에 성행한 대표적인 찰현(擦絃)악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유입되었다고 하며 궁중의 당악과 향악연주에 사용되고 한편으로는 이후 민속악 연주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현악기이다. 구조는 공명통 위에 58㎝ 길이의 대나무[立竹]를 연결하며 명주실로 만든 2개의 현을 걸고 이것을 활대로 문질러서 소리를 내도록 한다.
현재까지도 해금제작의 표본인 악학궤범에 의하면 해금의 통과 주아(周兒)·원산(遠山)은 화리·황상·대죽·산유자 같은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며, 공명통의 복판은 두충·오동나무 등을 쓴다고 한다. 그리고 입죽의 재료로 해묵고 마디가 많은 오반죽(烏斑竹)이 사용되는데, 입죽 속에는 주철을 집어넣어 입죽과 통을 연결시킨다. 활대는 출단화목 또는 오죽해죽을 사용한다. 활시위〔絃〕는 말총으로 만든 다음 시위에 송진을 칠해서 줄을 문지른다. 두 줄을 괴는 원산으로 예전과는 달리 박을 깎아서 쓰며, 말총 위 끝을 가죽으로 붙들어 맨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조현법은 주아 아래로 두 줄을 붙들어 맨 끝으로부터 3, 4촌 아래에서 식지로 두 줄을 당겨 쥐고 조율한다. 중현(中絃)과 유현(遊絃)은 완전5도의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연주는 왼손으로 음정을 찾고 오른손에 활대로 줄을 마찰하여 소리를 내며, 연주시의 음량은 두 줄을 괴는 원산을 이동시켜 음량의 크기를 조절한다. 즉 관현합주, 대풍류와 같이 큰 음량이 요구될 때에는 원산을 공명통 중앙에 세워 연주하며, 줄풍류, 세악, 가곡 반주와 같이 작은 음으로 연주할 때에는 원산을 공명통 가로로 이동시켜 음량을 작게 연주한다. 고려시대에 유입된 이후 궁중음악의 향악과 당악에 두루 사용되었으며 특이한 점은 관악기처럼 지속음을 내기 때문에 현악기이면서도 반드시 관악에 편성되어 온다는 것이다. 해금은 독주 악기로서 큰 각광을 받지 못하였으나 20세기 이후 산조음악의 성행으로 하여금 때를 같이하여 독주곡인 해금산조의 탄생을 나타나게 되었다.
넷째 아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당악기의 하나이며 일명 알쟁이라고 한다. 일곱 줄의 찰현악기인 아쟁은 사부 또는 현명악기에 든다. 이 아쟁은 줄은 송진을 묻힌 나무 막대기로 줄을 그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중국에서 대나무 조각으로 이 현악기를 연주했기 때문에 알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쟁(箏) 종류의 현악기가 백제와 고구려에서 연주됐다. 즉 고구려음악에서 탄쟁과 추쟁이 연주됐다고 통전에 전하고, 백제 음악에서 '쟁'이 연주됐다고 수서에 나온다. 그러나 그런 쟁 종류와 현악기인 아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고려 때 일곱 줄의 아쟁은 교방고(敎坊鼓)·대쟁·박·방향·비파(琵琶)·장고·적·퉁소·피리와 함께 고려사 권71 악지에 전한다. 고려시대 아쟁은 당악 연주에만 사용됐지만, 조선 초기 성종 때에는 당악과 향악에 모두 연주됐다고 한다. 악학궤범 1493 권2에 의하면, 성종 당시 아쟁은 향비파·해금·당비파·거문고·대금(大笒) 등과 함께 종묘의 등가·전정헌가(殿庭軒架)·전정고취(殿庭鼓吹)·연례악(宴禮樂)에서 연주됐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국악기는 다양하며 오늘은 현악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았다. 다음에는 관악기와 타악기도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대표적 음악 아리랑 (0) | 2017.08.06 |
---|---|
영원한 우상 비틀스 (0) | 2017.07.30 |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0) | 2017.07.30 |
국립국악원 (0) | 2017.07.30 |
여러 가지 박물관 (0) | 2017.07.28 |